워싱턴DC 백악관에서 벌어진 한미 정상회담, 공식 발표문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다. 양국 정상이 주고받은 선물들 하나하나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한 계산과 우연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정말 흥미롭다.
"이 펜, 두께가 완벽한데?" - 트럼프를 사로잡은 한국 펜의 정체
가장 웃긴 건 펜 이야기다. 원래 이재명 대통령 서명용으로 준비한 펜이었는데, 트럼프가 방명록 쓰는 걸 보더니 갑자기 "괜찮으시다면 제가 그 펜을 사용하겠습니다. 두께가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라고 말했다는 거다.
근데 여기서 반전. 트럼프는 원래 펜 취향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나는 볼펜은 싫어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로 두꺼운 만년필만 고집했다. 이유가 웃긴데, 손이 크고 서명할 때 힘을 많이 주는 스타일이라 얇은 펜으로는 자신의 시그니처를 제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트럼프가 한국 대통령의 펜을 보자마자 "두께가 완벽하다"며 반응한 거다. 우리 대통령실에서 미리 트럼프의 펜 취향을 조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박이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영광이죠. 대통령께서 하시는 사인에 아주 잘 어울릴 겁니다"라며 즉석에서 펜을 선물했는데, 이때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트럼프는 나중에 "아주 아름답게 쓰셨다"며 "한국어는 배우기 어려운 언어 아니냐"고 물었다는데, 펜 하나로 시작된 대화가 문화 이야기까지 이어진 셈이다. 역시 선물은 타이밍이구나 싶다.
거북선 = 조선업 로비? 숨겨진 산업 전략
거북선 이야기도 단순하지 않다. 대통령실 발표로는 "현대중공업 오종철 명장이 제작한 거북선으로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조선 기술 우수성을 알렸다"고 하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현대중공업 소속'이라는 부분이다.
왜 하필 현대중공업 명장이 만든 거북선일까? 사실 요즘 트럼프가 '메이드 인 아메리카' 선박 건조에 꽂혀 있다. 중국 견제 차원에서 미국 조선업을 부활시키겠다는 건데, 문제는 미국이 조선업에서는 한참 뒤떨어진다는 거다.
그래서 한국, 일본, 이탈리아 같은 조선 강국들이 미국 시장 진출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때 거북선을 선물한 건 "우리가 400년 전부터 세계 최초 철갑선 만들던 나라고, 지금도 세계 1위 조선업체가 있으니 협력하면 어떨까요?"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던 것 같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박살낸 거북선과 현재 세계 최고 LNG선을 만드는 현대중공업을 연결시킨 아이디어가 정말 기가 막히다. 트럼프도 "미국 조선업 살리려면 한국과 손잡아야겠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 맞춤 골프 퍼터의 비밀
골프 퍼터도 재미있다. 그냥 퍼터가 아니라 "수제 맞춤형"이라고 했는데, 대통령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신장에 맞춰 제작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190cm가 넘는 장신이라 일반 퍼터로는 자세가 어색할 수 있어서다.
골프 좀 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퍼터는 정말 개인적인 클럽이다. 키와 자세에 따라 길이와 각도를 정밀하게 맞춰야 하는데, 한국에서 트럼프의 신체 조건까지 고려해서 맞춤 제작해간 거다. 이 정도면 정성이 장난 아니다.
골드파이브라는 브랜드를 선택한 것도 의미가 있다. 수입 브랜드 아니고 국산인데 수제 맞춤이 가능한 업체다. "한국도 골프 장비 잘 만든다"는 걸 보여주면서, 동시에 맞춤 서비스까지 할 수 있다는 기술력을 어필한 셈이다. 트럼프가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도 높으니까 살아있는 광고 효과도 기대할 수 있고 말이다.
MAGA 모자 선물의 대담함
이건 정말 파격적이었다. 상대방 정치 브랜드를 선물로 준비해간다는 건 외교적으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자칫하면 아부로 보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트럼프는 이걸 엄청 좋아했다고 한다.
카우보이 스타일로 선택한 것도 센스다. MAGA 모자 중에서도 미국 서부 개척정신을 상징하는 카우보이 스타일을 고른 건 트럼프의 거침없는 성격과도 잘 맞는다. "당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존중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 연결시킨 거다.
실제로 트럼프는 답례로 자신이 직접 사인한 MAGA 모자를 돌려줬다. 이렇게 서로 MAGA 모자를 주고받는 장면은 정치적 이념을 넘어선 개인적 신뢰의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센스 만점 답례 선물들
트럼프도 답례 선물에서 나름의 센스를 발휘했다. 백악관 기념 메달은 기본이고, 자신이 사인한 MAGA 모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MAGA 모자를 가져온 걸 보고 즉석에서 준비한 걸로 보인다.
근데 가장 인상적인 건 오찬 메뉴판이다. 이걸 선물로 준다고? 처음에는 좀 의외였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개인적이고 의미 있는 선물이다. "우리가 함께 밥 먹었잖아요"라는 친밀감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그날의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소중한 기념품이다.
이건 트럼프다운 아이디어다. 형식적인 선물보다는 실제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본 거 같다. 실제로 두 정상의 오찬은 예정보다 길어졌고,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고 전해진다.
선물로 본 외교의 새로운 모습
이번 선물 교환을 보면서 느낀 건, 요즘 외교는 정말 다르다는 거다. 예전처럼 전통 공예품이나 예술품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개인 취향부터 정치적 정체성까지 다 고려한 맞춤형 선물을 준비한다.
특히 펜 에피소드는 준비된 시나리오를 벗어난 즉흥적인 순간이었는데, 오히려 이게 더 진짜 같고 인상적이었다. "대통령께서 하시는 어려운 서명에 유용한 펜이 될 것"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결국 이번 선물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인정하면서도 공통점을 찾아가는 성숙한 관계의 모습을 보여줬다. 거북선으로 시작해서 펜으로 마무리된 이 선물들은, 계획과 즉흥, 전략과 진심이 절묘하게 섞인 외교 예술의 걸작이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그토록 마음에 들어 한 한국산 펜 하나가, 앞으로 한미 관계에서 어떤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될지 기대가 된다. 작은 선물 하나가 큰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